👑 My thought 👑

양심에 대해... 正道를 지키는 자, 그렇지 않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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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구와 욕망은 역사와 종교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이를 종교로 풀어냈던 점에서는 오래전부터 가톨릭 신자들에서 끊임없이 '신에게 부끄럼이 없는가'라며 재차 확인을 하기도 하였고, 하물며 조선시대에서도 조차 문신 장유는 '어두운 방에 침묵의 공간이 있다. 사람들은 듣고 보지 못해도 신은 너와 함께 있다.' 라며 '네 게으른 몸을 경계하고 나쁜 마음을 갖지 말라. 처음에 막지 못하면 하늘까지 넘친다.' 라고 하였는데, 어떠한 가치에서도 양심과 正道를 지키는자의 중요성을 말하는 대목이다.

 

오늘 날, 우리 현대사회에서는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正道에서 벗어나 남을 등처먹거나 기만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일삼는다. 자신의 것이 아님을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갈취하거나 편취하는 행위를 행하며, 아무리 사소한 자신의 실수라 할지라도 이를 감추고 은폐한다. 

 

결국 자신은 속이는 것에 벗어나 타인을 이용하려 하는 행위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하늘을 우러러 보길,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는가?

 

양심을 벗어난 행위는 결코 그 결과가 올곧하지 못할 것임을 명심해야만 한다. 

제 아무리 가벼운 실수라 하더라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해야하며, 그 가치에 대해 인정할때 오히려 더 큰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의해 재택근무가 증가하였지만 이를 악용하는 이들 또한 상당하게 많아졌음을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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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기업에서 역시 직원들을 신임하지 못해 여러가지 장치를 마련하고 그에 따른 업무 프로세스를 개편하는 등. 양심을 벗어난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데에 비판아닌 비판을 하는 처벌규정을 마련하기도 한다. 

 

오늘 소개하는 이 모든 내용들에 대해서는 S-Oil의 사보에서 不期暗室 이라 하여 한양대 인문과학대학 연구교수 '박수밀'이 참여한 글 중 일부를 발췌하여 전한다. 

 

저마다 원하는 욕구들은 대단히도 많다. 

누구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기업내부의 물품을 빼돌려 수익을 창출해내는가하면, 또 다른 이는 기업기밀을 빼돌려 자신의 사업을 구상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이는 자신을 위해 자산을 갈취하여 이득을 보려한다. 

 

편한 방법이고 빠르게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긴하나, 과연 이러한 행위의 말로가 어떠할지 뻔하지 않은가? 

나의 것이 아님을 자신의 것이라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가 얼마나 떳떳한가?

 

신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기에 모든 결과를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어둠 속에서도 속이지 않는 진실함

유학의 종장인 퇴계 이황 선생은 무자기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무'는 금지를 뜻하며 '자기'는 자신을 속인다는 뜻이니 '무자기'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퇴계는 예순여덟에 종1품의 관직에 해당하는 우찬성이 됐지만 조정에 들어갈 때는 입는 옷은 한 벌뿐이었다. 나을 속여 재물을 축적하지 않았기에 평생을 검소하게 산 것이다. 조선시대 학자 박윤원은 "군주를 속이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고, 마음을 속이지 않고, 신을 속이지 않는다. 이 네 가지를 속이지 않음으로 나의 참됨을 온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직장으로 비유하면 상사를 속이지 않고 동료를 속이지 않고 내 양심을 속이지 않으며 하늘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속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대학> '성의장'에서는 "이른바 그 뜻을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니,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는 것 같이 하며, 선을 좋아하기를 호색을 좋아하는 것 같이 하라"고 했다. 속이지 않는 것은 진실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진실함을 잃으면 자신을 거짓으로 꾸며 남을 속이고 자신도 속인다. 

 

<중용>에서도 "감춘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은미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는데에서 삼간다"고 강조한다. 장소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도 이에 해당한다. 

 

正道를 걸으면 느릿하고 답답하게 보이며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아 사람들은 요령을 피우거나 원래 그렇게 한다는 핑계로 원칙과 양심을 저버린다. 그러나 사람들을 속여도 하늘이 알며 자신의 마음이 안다. 正道의 과정 없이 진정한 성과를 이룰 수 없다. 보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진실한 행동은 결국 값진 신뢰의 결실을 맺는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안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 앞에서는 규칙을 잘 지키거나 상대방을 칭찬하는 선한 행동을 보이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그 반대의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누군가 지켜보면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하지만, 보는 이가 없으면 본능대로 행동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시인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했다'고 고백한다. 큰 중죄를 범하고도 발뺌하는 이가 있다면 누군가는 작은 실수에도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윤동주 시인처럼 순결하고 예민한 양심을 지니지는 못할지언정 자기 양심조차 속이는 행위는 구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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