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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고찰? 과연?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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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철학과 교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미 잘 알려진 베스트 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세상에 짧은 질문을 던지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음을 떠올릴 수 있다. 오랜 역사를 통틀어 인간의 존엄성과 더불어 마땅히 지켜야할 '책임' 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봐야할 점들은 '철학' '종교'인들로부터 드러났던 만큼 현대사회에서는 마이클 샌델 교수를 빼놓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교수는 27세에 하버드대학 교수로 역임을 하였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으로 그 명성이 대단히 높아졌으며, 다양한 입장과 여러 상황에 따른 분석을 함께 겸하면서 명석한 지혜를 서슴없이 드러냈다. 정확히도 중립적이면서 객관적인 사고로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각자의 입장에서 과연 어떠한 부분이 서로에게 더 나은지 방향을 스스로 곱씹어 볼 수 있을 점들을 제시한다. 

 

나아가 최근에는 '정의'에서 더 큰 화두에 떠오를 '공정'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에는 '자본주의' '능력주의'를 비롯하여 과연 지금의 삶에 있어 우리는 '공정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포퓰리즘을 다루는 책. 그리고 능력주의에 대해. 

최근 알려진 '포퓰리즘'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우리가 사는 사회가 과연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논쟁을 이어오고 있다. 그럼 이쯤에서 '포퓰리즘'은 무엇인지를 반문하는 이들이 생기겠지만 쉽게 말해 포퓰리즘은 '정치인들이 대중의 인기를 본인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가장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오바마' '트럼프'를 들 수 있겠으며, 한국에서는 '박근혜'도 그러하였고, 기타 여러 정치인들 또한 그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러한 이야기가 등장했는가의 배경에는 그들의 연설들과 당선 이후의 변화들을 잘 관측해보면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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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바 : '당선' '지지율'

의무적으로 행해야하는 바 : '공약에 따른 실행결과 비율'

 

위의 2가지 사항을 비교하고 연설의 문구, 발언 등을 종합해보면 '포퓰리즘'인지에 대한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은 2021년 2월 초 JTBC의 차이나는 클래스에 화상 미팅으로 출연하여 여러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본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바를 명쾌하게 전한다. 포퓰리즘은 '능력주의' '자본주의'의 배경 속에 더 심화되기도 하였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있던 역사와 함께 했던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연 오늘날의 포퓰리즘을 말하기에 앞서서 자본주의가 심화된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모두 '능력주의'를 원하긴 하지만 그 능력은 온전한 자신의 것이 맞는가?

 

설문조사 등을 여러차례 진행한다고 한들 모두가 능력주의에 대해 '능력에 따른 보상'을 원하긴 하지만, 여러 상황들을 종합해본다면 결코 '공정'하게 느껴질만한 보상을 받기란 쉽지 않다. 반드시 동일한 위치에서 출발할 수 없으며, 만약 능력주의에 따른 보상을 공정하게 받고자 한다면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점을 떠올리니 마땅히 능력에 따른 보상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공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선제조건으로 '정치인'들의 행태부터 뜯어고쳐야만 한다. 정치인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이들이지만 공적활동이 아닌 '개인의 이득'을 위해 포퓰리즘을 남용하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또한 그들 역시 포퓰리즘의 시작점이 온전한 자신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 생각한다고 봐야만 한다. 이 대목에서 그렇다면 '능력주의'는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 + '운' 이다. 

본디 '능력'이라 함은 '운'의 작용이 상당히 크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운' 이전에 개인의 노력에 따라 '능력'이 받춰주지 못한다면 '능력주의'가 성립되기란 어렵다. 

(그냥 재산 까먹는 금수저가 될지도 모른다. 과연 이러한 자를 능력주의라 할 수 있겠는가?)

 

'운'에 대해서는 연상하는 점들에 대해 많은 이들이 '복권 당첨' '재벌2세로 태어난 운' 따윌 말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보자. 우리가 태어난 곳. 장소. 시간. 시대의 흐름. 트렌드.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운'이 작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운'을 쓸 줄 아는 '능력'이 함께 작용하여 만들어진 시너지가 '능력주의'라고 하겠다.

 

즉, 주변에 다양한 '운'이 작용한다 하더라도 이를 활용할 개인의 통찰과 능력이 부재한다면 쓸모가 없다. 그러나 통찰과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것 자체만 보더라도 이는 '운'이라고 통칭할 수 있다. 피라미드 구조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공정'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포퓰리즘의 근원지인 정치세력들을 보노라면 빈민층에 속한 이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 속에 있지 못할지언데 그들에게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제 아무리 노예제도가 사라진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태어났을때부터 '빈민층'이면서 '교육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들에게는 '기회'가 없다고 봐야만 한다. 대표적으로 이러한 사회적 통념을 두고 저울질하는 기본전제가 바로 '교육'과 '고용시장'에 있다고 바라본다. 

 

다시한번 잘 살펴보자

고용시장에서 '입사지원'을 하는 기본 전제는 '최소 전문대졸' '4년대 학사졸' 이상이어야만 지원자격이 부여된다. 이는 교육조건에 대한 내용이라 할 수 있으며, 포퓰리즘을 행하는 정치세력은 이러한 출발점의 '불공정함'에 대해 자각하지 못한다. 이는 빈익빈 부익부를 가속화하는 전제이며, 계급의 격차를 더욱 심화하는 주된 원인인다. 또한 이에 대해 '능력주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능력주의의 공정함은 제대로 본 것이 맞는가? 

 

대통령들은 '모두에게 공정하며, 기회는 열려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교육받아 대학을 졸업하고 고용시장에 진출하시기 바랍니다. 일자리는 많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름을 자각하고 있는가? 아니, 빈민층들은 당장의 생계에 숨막혀 교육은 뒷전으로 둘 수 밖에 없고, 설령 교육을 받는다 하더라도 대학을 다닐 시간과, 학비는 어떻게 하는가? (누구는 부모가 모든 지원을 하는가하는 반면, 누구는 부모를 부양해야하는 자녀인데 어찌 공정한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가?)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라면 '출발선'부터 같아야 하며, 

출발선이라고 한다면 '공정한 교육'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고용시장의 문턱 역시 '공정한 출발'에서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모두 해소된 이후에야 '능력주의'를 다시 논할 수 있겠다. 

 

당신은 현대사회가 과연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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